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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승 회고록] [신용승 회고록] 해방 같지 않은 해방
거리를 휩쓴 태극기 물결학교에 휴교령이 내렸을 때, 12살의 나이로 지루하고 힘겨운 제사공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공장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그리고 정오가 되자 일본 천황의 항복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공장의 일본인들은 모두 라디오 앞
신용승   2014-12-01
[신용승 회고록] [신용승 회고록] 동료교사를 부끄럽게 만드신 어머니의 역사의식
종친회에서 효부상을 받으신 어머니나의 어머님 이열래(李烈來) 님은 1899년 음력 4월 5일 충청북도 충주군 노은면(老隱面) 안락리(安樂里) 샘골이라는 아주 평화스러운 마을에서 노은면장을 지내신 나의 외조부 이병옥(李炳玉) 님의 2남 2녀중 막내딸로
신용승   2014-11-17
[신용승 회고록] [신용승 회고록] 어릴적 고향에서 알게 된 노비제도의 모순
서로 성격이 판이했던 할머니와 할아버지할머니는 반상의 계급과 유교사상이 머릿속에 철저히 박히신 분이었다. 길을 가다 원두막에서 참외를 사고 상것인 외간 남자에게 참외 값을 치르실 때는 돈을 땅에다 놓고 지팡이로 돈을 가리킬 정도였다. 그리고 말씀을 청
신용승   2014-11-05
[신용승 회고록] [신용승 회고록] 왕소금 안주 삼아 막걸리 드시던 아버지
자식들 차별하고 역사의식도 없으셨던 아버지해방되기 3년 전인 1942년 4월 16일, 큰형님이 재취장가를 들었다. 큰형님은 영등포 군수품공장 공장장으로 근무하면서 홀아비로 지냈는 데, 한집에 살던 상진이 할머니라는 분이 홀아비인 줄 알면서도 큰형님의
신용승   2014-10-16
[신용승 회고록] [신용승 회고록] 담배 한 갑 사려고 새벽 3시부터 줄을 서다
징용을 피해 우리 집으로 몰려온 고향 일가들아버지는 영등포 당산동에 있는 피혁공장 노동자로 계시고 어머니는 애국반 반장일을 하셨다. 큰형님이 공장장으로 계시던 공장은 일본 군대 대포알을 생산하던 군수품공장이었다. 그 당시 그 공장에만 취직해도 탄광이나
신용승   2014-09-30
[신용승 회고록] [신용승 회고록] 나는 여자들의 일본식 이름이 정말 싫다
내 아내의 이름은 진경자(陳京子)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40세 이상 되는 여자들의 이름엔 뭔 자(子) 자가 그리 많은지!여자들 이름에 아들 자 자를 붙이는 것은 일본식인데, 해방이 된 지도 어언 60년이 넘은 지금도 자 자 투성이다. 이것은 일
신용승   2014-09-24
[신용승 회고록] [신용승 회고록] 천성적으로 급하게 타고난 성질
하루는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어머니가 어느 낯선 중년 아저씨와 마루 끝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그 아저씨가 “쟤가 누구입니까?”하자 어머니는 “쟤가 훈이 아닙니까” 하셨다. 그때 그 아저씨가 놀라며 “훈이가 아직 죽지 않고 이렇게 살아있습니까?”
신용승   2014-09-15
[신용승 회고록] [신용승 회고록] 어린 시절 별명 ‘극장대장’과 ‘씨름꾼’
극장대장이란 별명을 지어준 여선생님 마쓰오카‘호사다마(好事多魔)’가 이런 것인가? 연극을 본 다음날 학교에서 날벼락을 맞았다. 내가 누님과 극장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자기는 구경시켜 주지 않았다고 약이 오른 친구 녀석이 마쓰오카 선생님께 고자질을 한
신용승   2014-09-02
[신용승 회고록] [신용승 회고록] 가슴 설레게 했던 첫 짝사랑
이성에 눈 뜨게 해준 ‘경자’와 아내가 된 또 다른 ‘경자’나만 조숙했는지 아니면 그 나이면 다 그런지 지금도 잘 모르겠는데, 1학년 때 여자반 아이 중 하나가 내 가슴을 설레게 했다. 성씨는 기억할 수 없으나 이름은 경자(京子)(일본식으로는게이꼬)였
신용승   2014-08-25
[신용승 회고록] [신용승 회고록]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 같았던 조선인 여선생
전쟁 초 승승장구하던 일본군하여간 학교생활은 재미있게 흘러갔다. 어느덧 2학년이 되고 그 해 겨울이었다. 정확히 1941년 12월 7일, 일본군 비행단이 선전포고도 없이 미국의 하와이(진주만)를 기습공격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태평양전쟁의 막이 올랐다.
신용승   2014-08-18
[신용승 회고록] [신용승 회고록] 기계충과 싸우던 코흘리개 시절
1940년 우리 세 식구는 나름대로 정이 든 평양에서 서울 영등포 당산동 228번지로 이사를 했다. 드디어 이산가족 생활을 청산하고 온 가족이 모여 사는 가난하나마 행복한 생활이 시작되었다. 지금은 코 흘리는 아이들을 눈 씻고 찾아봐도 못 찾겠는데,
신용승   2014-08-11
[신용승 회고록] [신용승 회고록] 저녁이면 끼니로 먹던 냉면
냉면에 얽힌, 평양의 아름답던 어린 시절 추억 한 토막이 아련히 떠오른다. 누구나 가난하게 살던 시절이지만, 그나마 저녁은 냉면으로 허기를 달래기도 했다. 해가 지면 가난한 사람들이 대소쿠리를 들고 냉면을 만들어 파는 국수집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 그
신용승   2014-08-04
[신용승 회고록] [신용승 회고록] 형님만 먹을 수 있는 고기찌개
어머니는 큰형님이 공장에서 돈을 벌기 위하여 야근도 마다 않고 일하는 게 힘든 일이라며 고기찌개를 자주 해 먹였다. 하지만 어려운 살림에 돈을 아끼시느라 쇠고기든 돼지고기든 한 근을 못 사고, 늘 200g정도를 사 오신다.어머니는 그 고기를 작은 뚝배
신용승   2014-07-25
[신용승 회고록] [신용승 회고록] 평양역에서 손 흔들던 응선이형이 눈에 선하다
우리가 세든 집 안채에는 나보다 나이가 대여섯 살쯤 더 먹은 응선이 형이 살고 있었다. 한쪽 다리를 좀 심히 절던 응선이 형은 홀어머니와 둘이서 외롭게 살고 있었는데, 그 어머니는 시도 때도 없이 술을 먹고, 술이 취하면 응선이 형에게 주사를 부리는
신용승   2014-07-18
[신용승 회고록] [신용승 회고록] 어머님 손에 이끌려 탄 평양행 야간열차
대안미디어 너머가 연재하는 은 신용승 민족문제연구소 수원지부 고문의 자서전이다. 신 고문의 자서전은 지난 2010년 같은 제목의 책(1권, 2권)으로 출간된 바 있다. 책에는 결코 평탄하지 않은 삶, 거칠고 우여곡절 많던 저자의 인생역정이 고스란히 담
신용승   2014-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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