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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로 가득찬 마추픽추의 진실
김수아  |  ksaksa4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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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03  16:4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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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문화유산’을 생각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추픽추를 생각할 것이다. 마추픽추는 미스테리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마추픽추 말고도 Espíritu Pampa 등과 같은 거대한 유적지들이 많다. 그렇다면 그렇게 많은 유적들 중에 왜 하필 마추픽추에 유독 관심이 쏠리는 것일까? 그리고 무엇이 마추픽추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가? 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마추픽추는 스페인어로 ‘오래된 봉우리’란 뜻으로 페루 쿠스코시 북서쪽 안데스 산맥에 위치해 있다. 공식적으로는 1911년 미국의 탐험가이자 역사학자인 하이럼 빙엄이 우르밤바 계곡에서 발견하였으며, 현재까지도 여러 학자들이 발굴해내고 있다. 마추픽추의 특징은 3m씩 오르는 계단식 밭이 40단이 있으며, 3,000개의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을 정도로 크고, 유적의 면적은 약 13k㎡다. 또한 이러한 규모로 인해 돌로 지어진 건물의 총 개수는 약 200호 정도 된다. 마추픽추는 큰 지역을 유용하게 사용하기 위해 신전 지역, 사제나 귀족의 거주 지역, 일반 거주 지역, 농경 지역으로 총 4개의 부분으로 나누었다. 이러한 마추픽추의 특징으로 인해 유네스코로 지정되어 있으며, 2007년에는 신 7대 불가사의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하이럼 빙언으로부터 시작해서 많은 역사학자나 인류학자들은 마추픽추에 많은 불가사의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수수께끼들은 거의 풀려나가고 있는 추세이다. 그럼 이제부터 마추픽추에 어떠한 미스테리가 있고 어떻게 풀려나가고 있는지 확인해보자.

1. 마추픽추는 무엇을 위한 도시였나?
앞서 언급했듯이, 마추픽추는 신전 지역, 사제나 귀족의 거주 지역, 일반 거주 지역, 농경 지역 총 4개의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를 토대로 살펴보면 마추픽추의 용도를 조금 더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총 6가지 설이 존재한다.
첫째, ‘Vilcabamba의 잃어버린 도시설’이다. 16세기에 스페인 정복자로부터 대항하기 위한 잉카 원주민들의 최후의 독립 공간이라는 것이다. 마추픽추가 산 위에서 보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스페인 정복자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세웠다는 것은 말이 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인류학자들은 Espíritu Pampa에 위치한 마지막 피난처를 찾아냈다. 이 도시는 1539년 Manco Inca에 의해 발견되었다. 사실 빙엄은 1911년에 Espíritu Pampa를 찾았지만 너무 작고 크지 않았기 때문에 유명한 도시가 아닐거라고 짐작하였다. 하지만 그가 찾은 것은 단지 20개의 건축물이었고 실제로는 400-500정도라고 한다.
그 의외에도 둘째, ‘수녀원설’, 셋째, ‘중죄인을 위한 감옥설’, 넷째, 잉카제국이 국가에 필요한 목공과 석조술 등의 기술을 가르치는 현대적 의미의 연수원과 같은 ‘교육시설로서의 용도설’이 있지만 정확한 근거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설로만 존재한다.
다섯 번째로, ‘빠차꾸떽을 위해 만들어진 도시설’이 있다. 잉카 최고의 군주라고 일컫는 빠차꾸떽의 지시로 만들어져, 그가 하늘을 관찰하고 농경과 관련된 시기를 파악하기 위해 머무른 도시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유력하다고 알려진 ‘영적인 도시설’이 있다. 이에는 여러 가지 근거가 존재한다. 첫째, 이탈리아의 천체 물리학자 Magli는 순례자들이 안도하며 걸을 수 있는 순례길이라고 주장하였다. 둘째, 마추픽추는 신성한 강이라고 불리는 urubamba강에 둘러싸인 산 위에 지어졌다. 셋째, 잉카 사람들은 태양이 신성한 신이라고 믿는데, 태양이 오를때 놓이는 중요한 산 위치에 마추픽추가 세워졌다.
당시의 미신들의 기반으로 마추픽추가 세워졌다는 가설은 다른 가설들에 비해 신빙성이 있고 현재로서 가장 적합하다는 여론이 있다.

2. 순식간에 사라진 잉카인, 어디로 갔나?
마추픽추에서 사람들이 살았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경작 시설도 존재하였고, 신전 지역도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에서 살았던 잉카인들이 어디로, 왜 사라졌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의문이 존재한다고 한다.
학자들은 마추픽추에 1만명의 인구가 살았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종교 사실로 보아 사제들이 거주했을 것이고, 계단식 경작지로 보아 평민들도 살고 있었을 것이라는 거다. 하지만 실제로 ‘하이런 빙엄’이 마추픽추를 처음 발견했을 때 모든 신전과 황제들의 묘는 이상하게도 비어 있었다. ‘태양의 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부터 발견된 33구의 나이 어린 여성 미라 빼고 말이다. 마추픽추는 외부에서 적들이 침입해 파괴된 것이 아니라 버려진 것이다.
이에 대한 가능한 설로는 전쟁설이 있지만 도시나 유골에서 폭력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또한 격리 구역이라 감염되기 쉬운 전염 때문에 잉카에서 고립되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가장 유력한 설로 전염병 설이 있지만 거주자들의 유골에서 아직 전염병에 대한 단서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하이럼 빙엄은 여자들의 유골에서 매독 증상을 찾았다. 이는 유럽에서부터 도착하였다고 믿고 있다.
마추픽추에서 잉카인들이 사라진 시기를 유추해보면, 1400년대가 잉카 문명의 황금기였고, 1520년대가 스페인 정복자들이 남미로 침입한 시기이기 때문에 이 두시기 사이에 잉카인들이 마추픽추를 떠났을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또한 전염병 증상을 단서로 찾았으므로 현재로서는 이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할 수 있다.


이밖에도 페루의 마추픽추에 관한 기사를 접하다 보면, 흥미를 유발하는 여러 기사들을 접할 수 있다. 마추픽추에서 외계인의 손과 두개골이 발견되었다는 등, 미스테리 벽화가 발견되었다는 등이 있다. 하지만 외계인의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기사는 정확한 소견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이 또한 그저 마추픽추에 대한 관심을 끌기 위한 일종의 미끼와 같다고 느낄 수 있다. 사실 한국의 책이나 인터넷에서 미스테리라고 여기는 부분들이 외국 사이트에서는 이미 유력한 증거들을 내놓은 경우도 많이 보인다. 현재까지 마추픽추의 여러 의문들에 대해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는 상태이다. 하지만 역사나 지질학적인 정황상 많은 부분들이 풀려나가고 있고 앞으로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이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인터넷 기사들은 독자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일부러 제목을 자극적으로 넣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막상 그 기사를 클릭해보면 정말 별거없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마추픽추도 어떻게 보면 한 기사와 같다고 여겨진다. 이미 과학적, 역사적으로 증명이 되어 있는데 오히려 세계인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더욱 이러한 사실을 배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미스테리라고 여기는 마추픽추, 앞으로의 향후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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